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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전남 강진(2025)

정약용을 따라, 강진

by 소소한 일상의 여행 2025. 12. 23.

유배 온 선비가 남긴 학문의 향기가 서려 있고, 천 년을 이어온 청자의 빛깔이 고요히 숨 쉬는 고장, 강진!

정조의 두터운 신임을 받으며 개혁의 중심에 섰던 다산 정약용. 그러나 정조가 승하한 뒤 그의 삶은 한순간에 뒤바뀌었다. 천주교를 탄압한 신유박해에 휘말렸고, 여기에 역모 혐의까지 더해지면서 결국 머나먼 강진으로 유배를 떠나야 했다.

낯선 땅 강진에서 시작된 유배생활은 무려 18년. 자유를 잃은 긴 세월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곳은 다산이 수많은 저술을 남기며 사상과 학문을 더욱 깊이 다져간 공간이기도 했다. 절망의 시간이 위대한 지성의 시간으로 바뀐 곳, 바로 이곳 강진에서 다산의 또 다른 인생이 시작되었다.

동문샘의 유래

강진읍이 와우형국이고 동문 마을에는 소의 왼쪽 눈을 뜻하는 샘이 있다. 강진읍성 사대문(四大門)의 하나인 동문이 있어 마을 지명을 동문(동문안, 東門內)이라 하였다고 한다. 동문샘(東門井)은 마을 안에 있는 샘이다. 마을 뒷산 우두봉을 황소의 형국이라 하여 동쪽에는 동문정이 있고 서쪽에는 서문정이 위치하고 있어 이를 황소의 왼눈과 오른눈이라 칭하였다고 한다. 동문샘은 마을 주민이 상을 당하거나 어린아이가 출생하였을 때 반드시 물 색깔이 하늘색으로 변한 후 다시 맑은 물로 된다고 한다.

 

사의재

한자가 발명된 이래 최고 시대의 사상가(위당 정인보의 평가) 다산 정약용(1762~1836)은 강진에서 내리 18년(1801~1818)을 살았다. 사의재(四宜齋)는 다산이 처음 도착해서부터 만 4년간 기거하던 역사공간이다.

조선시대 문예부흥기를 이끌었던 개혁군주 정조대왕(1752~1800)은 정약용을 극진히 신임하였다. "그대 밖에 없다. 문장에서도 그대 능가할 자 없고, 100년만의 재상 재목 그대 밖에 없다"고 했다. 그 정조가 세상을 뜨자 당파싸움으로 시종하던 조정은 종교 신앙문제를 표면적 까닭(황사영백서사건-신유사옥)으로 피비린내 나는 정적 제거에 나서고, 이 와중 정약용 일가는 일찍이 들어보지 못한 끔찍한 수난의 희생물이 된다. 형(정약종)과 형수(문화 유씨)와 매형(이승훈)과 조카들(정철상 · 정정혜)과 조카사위(황사영)가 한꺼번에 몰살당한다. 그리고 자신은 또 다른 형(정약전)과 돌아올 기약없는 머나먼 귀양길에 오르게 된다.

사의재는 슬픈 곳이다. 당대 최고의 석학이자 임금 사랑을 한 몸에 받던 총신의 위치에서 하루 아침에 쑥대밭이 되어버린 가문과 생이별하는 대역죄인으로 내몰린 이가 낯설고 물설은 곳에 도착해 지칠대로 지친 몸을 처음 의지한 곳이 사의재였다.

사의재는 조선 개혁정신의 상징이자 실학의 정점이었던 고독한 선각자가 유배생활을 시작했던 슬픈 곳이지만, 동시에 다산 실학의 장엄한 첫 성지이기도 하다.

사의재기(四宜齋記) 정약용
사의재라는 것은 내거 강진(康津)에 귀양가 살 때 거처하던 집이다. 생각은 마땅히 담백해야 하니 담백하지 않은 바가 있으면 그것을 빨리 맑게 해야 하고 외모는 마땅히 장엄해야 하니 장엄하지 않은 바가 있으면 그것을 빨리 단정히 해야 하고 말은 마땅히 적어야하니 적지 않은 바가 있으면 빨리 그쳐야 하고, 움직임은 마땅히 무거워야 하니 무겁지 않음이 있으면 빨리 더디게 해야 한다.
이에 그 방에 이름을 붙여 '사의재(四宜齋)'라고 한다. 마땅하다(宜)라는 것은 의롭다(義)라는 것이니 의로 제어함을 이른다. 연령이 많아짐을 생각할 때 뜻한 바 학업이 무너져 버린 것이 슬퍼진다. 스스로 반성하기를 바랄 뿐이다.
때는 가경(嘉慶 청인종(淸仁宗)의 연호) 8년(1803, 순조3) 겨울 12월 신축일 초 열흘임 동짓날(冬至日)이니, 갑자년(1804, 순조4)이 시작되는 날이다. 이날 주역(周易) 건괘(乾卦)를 읽었다.

정약용이 사의재에 머무를 당시, 지역민들과 도움을 주고 받으며 유배 생활을 이어갔다고 한다.

초당림

강진군 만덕산 기슭에 있는 민간 수목원이다. 메타세쿼이아길, 편백숲 등 숲길을 걷는다. 자연을 가장 가까이서 만난다.

어변성룡도(魚變成龍圖)

어변성룡도는 물고기가 변하여 용이 된다는등용문의 고사를 담은 그림으로서 약리도(躍鯉圖)라고도 하는데 선비가 과거에 급제하기 위하여 모든 어려움을 참고 학업에 정진하는 모습을 은유적으로 담고 있는 그림이라 할 수 있다. 이 그림은 과거를 앞둔 벗에게 합격과 출세를 기원하며 선물로 주고받았던 그림이다.(한국민화뮤지엄 소장)

한국민화뮤지엄 옆에 고려청자박물관이 있다. 강진이 왜 '고려청자의 고향'이라 불리는지 한눈에 보여주는 곳이다. 통일신라 후기부터 이어진 청자의 역사와 가마터 유적, 고려청자의 제작 과정까지 차근차근 살펴볼 수 있다. 태안 앞바다에서 발견된 고려청자 운반선의 도자기 역시 대부분 이곳 강진에서 만들어졌다고 하니, 당시 강진 청자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박물관 옆 고려청자디지털박물관에서는 미디어아트로 재탄생한 청자의 빛깔과 문양을 색다르게 감상할 수 있다. 조금 더 발걸음을 옮기면 도예촌이 이어진다. 현대 도예가들이 빚어낸 아름다운 청자를 감상하거나 마음에 드는 작품을 여행의 기념으로 구입해도 좋을 듯 하다.

 

강진만 생태공원

강진만생태공원

 

 

청렴 퀴즈에서 아깝게 2위!! 강사가 준비한 1위와 2위의 선물 차가 엄청나다. 아쉬운 마음 뿐이다.

 

▣ 백운동 원림

백운동 암각 글

자연석에 새겨진「백운동(白雲洞)」세 글자는 백은처사 이담로(1627~1701) 선생이 기록해 두었다고 한다.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보아서 학문을 익혀 남을 이롭게 살고자 하던 주자의 백록동 서원을 의식하고 "백운동" 이라고 바위에 새긴 것으로 전해오고 있다.

 

월출산 자락의 차밭!

월출산 남쪽 자락에는 사계절 푸른빛을 간직한 차밭이 펼쳐진다. 병풍처럼 둘러선 월출산과 끝없이 이어지는 녹차밭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경을 만든다. 이 차밭은 정약용의 제자 이시헌이 스승에게 차를 보내기 위해 가꾸기 시작한 곳으로 전해진다.

차밭 옆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차 브랜드 '백운옥판차'​를 만든 이한영 선생의 생가와 백운차실이 있다. 차 한 잔을 마시며 창밖의 차밭과 월출산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듯하다.

조금 더 걷고 싶다면 인근 강진다원을 추천한다. 푸른 차밭 너머로 월출산이 펼쳐지는 풍경이 인상적이며, 숲길 끝에는 호남 3대 정원으로 꼽히는 강진백운동원림이 기다리고 있다. 대나무 숲길과 고즈넉한 정자를 거닐다 보면 여행의 여운이 더욱 깊어진다.

 

▣ 백련사

정약용이 유배 시절 혜장 스님과 학문을 나누고 차를 마시며 마음을 다스리던 곳이다. 화려함보다는 고요함이 먼저 다가오는 백련사. 잠시 걸음을 멈추며 숲길과 산사의 여유를 느낀다.

 

▣ 다산동암

정석(丁石)

다산이 직접 새겼다고 전해지는 정석은 다산초당의 제1경이다.

아무런 수식도 없이 자신의 성인 정(丁)자만 따서 새겨 넣은 것으로, 다산의 군더더기 없는 성품을 그대로 보여준다.

만덕산 중턱에 자리한 다산초당! 겉보기에는 소박한 초가이지만, 이곳은 다산 정약용이 유배 생활 중 무려 11년을 머물며 학문과 사색에 몰두했던 공간이다.

그는 해남 외가에서 수많은 책을 가져와 밤낮없이 연구를 이어갔다. 세상과 단절된 유배지였지만, 그의 배움과 열정만큼은 누구도 가둘 수 없었다. 그렇게 작은 초당에서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를 비롯한 500여 권의 저술이 탄생했다.

절망의 유배지가 오히려 조선 최고의 실학을 꽃피운 배움의 공간이 된 것이다. 다산초당은 오늘도 '환경이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의지가 역사를 만든다'는 사실을 조용히 들려주고 있다.

겨울의 다산초당은 유난히 고요하다. 비자나무와 동백나무가 우거진 숲길을 따라 천천히 걷다 보면 어느새 초당에 닿는다. 마루에 앉아 겨울바람을 맞고 있노라면, 200여 년 전 이곳에서 붓을 들었던 다산 정약용의 고독과 열정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초당 뒤편에는 백련사로 이어지는 오솔길이 있다. 다산이 가장 가까이 지냈던 혜장 스님과 이 길을 오가며 학문을 논하고 차를 나누었다고 전해진다. 다산초당 입구에는 다산박물관이 있어 그의 삶과 사상을 함께 둘러보기 좋다.

 

다산오솔길

백련사와 차밭 사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동백숲이 아름답다.

초당의 다산은 백련사로 이어지는 고갯길을 넘었다. 벗(백련사 주지 혜장(1772~1811)도 만나고 차도 구하기 위함이다. 초당에서 백련사까지 1Km 남짓한 이 고갯길이 '다산오솔길'이다. 선비와 승려가 오간 길이니, 유교와 불교가 만난 길이다.

2박3일간 머물렀던 강진청렴연수원! 다음에는 FUSO(Feeling-Up, Stress-Off의 약자) 과정으로 강진을 다시 찾으면 어떨까? 농가에서 하룻밤을 보내며 농촌 주민들의 훈훈한 정을 경험하는 프로그램이라고 한다. 

강진은 단순히 둘러보는 여행지가 아니라, 천천히 걸으며 생각을 채우는 여행지였다. 다산의 삶과 차 향기, 월출산의 풍경이 어우러져 마음까지 한결 여유로워졌다. 바쁜 일상을 잠시 내려놓고 싶다면, 다시 찾고 싶은 곳이다.